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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디지털 물류혁신, 성공과 실패 사이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송상화 교수

 

2000년대 초반 RFID의 등장으로 물류 분야 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이 급격히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되었으나, 제한된 성능과 경제성으로 RFID는 아직까지도 물류 산업 전반에 제대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창고 기술 역시 물류센터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켜 줄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았으나, 오늘날 대다수의 기업들은 여전히 선반과 랙으로 구성된 기본적 형태의 물류센터에 의존하고 있으며 잦은 고장과 낮은 유연성으로 자동창고 기술은 특정 산업에서 제한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MIT 교통물류연구소의 공급망 혁신 관련 연구에서도 물류 및 공급망 분야 연구개발 및 혁신이 기업 경영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 사례도 많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1].


하지만, 기업경영 환경이 글로벌화되고, 제품 및 서비스의 개인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IT 분야의 급속한 발전은 물류 분야 역시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차별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글로벌 3PL 조사에서도 화주기업들이 물류기업 선택의 중요 기준으로 혁신성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2]. 화주기업들은 기존의 점진적 프로세스 및 기술 혁신 보다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물류기업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제 물류기업들은 낮은 단가와 고객 만족이라는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파괴적 혁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경쟁상대 역시 같은 산업 내 물류기업이 아니라 아마존이나 구글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로 바뀌고 있다. 애플의 등장으로 전자산업의 경쟁구도가 완전히 재편되었듯이 아마존이나 구글의 혁신은 물류분야의 경쟁 구도를 재편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RFID나 자동창고가 그랬듯, 아마존과 구글의 물류기술 혁신 역시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과연 성공적인 물류 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이 있을까? 왜 많은 물류 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이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물류기업의 창의적이고 파괴적인 혁신 추진에 바탕이 될 것이다.

 
먼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근본적 조건은 기술 중심이 아닌 고객에 대한 가치 중심의 혁신을 얘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자연스럽다. 브라운관 TV로 유명했던 SONY는 평판 LCD TV가 시장에 출시된 이후에도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보다 기존의 브라운관 기술을 고도화하는데 더욱 노력하는 보수적 전략을 지속하였다. LCD 기술로는 브라운관 TV에서 보여지는 색감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들은 소비자 역시 색감 구현이 제한된 LCD TV가 아닌 브라운관 TV에 한동안 남아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고객들 역시 처음 접한 LCD TV에서의 잔상이나 색감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었고, 시장조사나 고객의소리 VOC (Voice of Customer)에서도 화면의 크기보다 잔상이나 자연스러운 화면 구성이 더욱 중요한 항목으로 조사가 되었다. 그러나, 대형화면을 통한 영화나 스포츠경기 감상은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고객에게 선사하였고, 시장은 급격히 LCD TV로 이동하게 된다.


하버드 대학의 크리스텐슨 교수는 그의 저서 "혁신의 딜레마"에서 지속적 혁신 (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 (Disruptive Innovation)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혁신에 게을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혁신을 지속한 것이라는 딜레마에 대해 얘기하였다 [5]. 특히, 시장에서 크게 성공할수록 더욱 잘못된 방향으로 혁신을 지속하여 결과적으로 성공할수록 실패의 확률이 높아지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선도기업은 소비자가 부딪히는 현재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지속적 혁신을 추구하지만, 소비자도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이 등장하였을 때 시장선도기업은 기존의 관점에 얽매여 새로운 기술과 프로세스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즉, 소비자 중심의 사고라는 것은, 현재의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추라는 것은 아니며, 소비자 역시 자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실제로 그것을 보기 전까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애플의 혁신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4].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포드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소비자 중심의 사고가 어려운 이유를 단적으로 표현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혁신의 두번째 조건은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다.

온라인 마트라는 개념으로 등장했던 미국의 웹밴 (WebVan)은 온라인을 통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구입할 수 있다면 낮은 가격에 신선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어 유통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웹밴은 신선식품 온라인 유통의 핵심을 품질이라고 분석하였고, 물류센터의 자동화와 전산화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였다. 특히, 전용 캐로젤 시스템을 도입하여 작업자가 피킹하지 않고 캐로젤이 회전하며 작업자에게 필요한 제품을 이동시키는 물류시스템을 통해 물류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By Mark Coggins from San Francisco - chap09,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533209

그러나, 상품마다 크기나 보관방법이 다르고, 대다수의 식품 및 식자재들이 상온/냉장/냉동 제품으로 혼합되는 특성상 많은 제품들이 높은 투자를 통해 개발된 캐로젤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신선식품 및 식자재 온라인 유통의 핵심은 다양한 특성을 가지는 제품들을 효과적으로 조합하고 이를 최대한 빠른 시간에 배송하는 것이었으나, 웹밴은 상온 보관 제품의 자동창고 시스템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등 경쟁력의 핵심 요소와 맞지 않는 부분에서 시간과 투자를 낭비하였다. 웹밴의 파산 후 해당 설비들은, 웹밴에 특화된 시스템이라는 특성으로 다른 기업이 활용할 수 없게 되어 재활용되지 못한 채 모두 폐기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을 해결하지 않고 주변을 개선하는데 노력하게 될 경우 물류 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이 오히려 경영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아마존에 인수된 Kiva Systems는 온라인 유통산업 물류센터 자동화의 핵심을 규모의 경제에 의한 원가 경쟁력이 아니라 유연성으로 보고 무인운반차 AGV와 선반(Rack)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자동창고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이동이 가능한 소규모 선반들을 무인운반차가 주문피킹 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작업자에게 이동시키면 작업자는 필요한 제품을 선반에서 피킹하여 하나의 주문을 완성한다. 작업자는 이동할 필요가 없고 넓은 물류센터에서 무인운반차들이 이동하므로 피킹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동창고나 웹밴의 캐로젤 시스템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Kiva 로봇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소규모 선반들을 사용함으로써 수요에 따라 투입되는 선반의 수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고 투입되는 로봇 역시 유연하게 조절하여 수요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자동화의 특징인 높은 시간당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Kiva Systems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낮은 생산성이 아니라 대규모 투자에 따른 설비용량 변화의 어려움으로 보고 이를 유연성으로 극복한 것이다.

source: https://spectrum.ieee.org/robotics/robotics-software/three-engineers-hundreds-of-robots-one-warehouse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Kiva Systems를 창업하여 Amazon에 매각한 Mick Mountz는 WebVan에서 근무했었다는 점이다.

WebVan의 실패에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Kiva Systems를 창업하고, 성공적인 시스템 개발 후 Kiva Systems는 Amazon에 인수되어 Amazon Robotics가 되었다. 이와 같이 문제의 근본원인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물류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혁신의 마지막 조건은 화주기업과 물류기업의 상호 협력적 관계 구축에 있다.

물류산업은 화주기업이 자사의 물류프로세스를 물류기업에 아웃소싱하여 서비스를 공급받는 구조로 운영된다. 입찰 과정을 통해 최적의 물류기업을 선정하고, 계약기간 동안 서비스 제공 후 입찰을 반복하는 구조 속에서 화주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하여 물류기업 선정에 있어 비용 및 원가절감을 최우선 기준으로 설정하고, 이후 서비스 과정에서도 물류원가 절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화주기업이 눈에 보이는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경우 물류기업 역시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혁신을 통한 품질향상보다 낮은 원가를 제공하는 기업들에 서비스를 재위탁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화주기업의 서비스 불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3PL 조사에 따르면 물류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의 중요 조건으로 화주기업과 물류기업 간 신뢰관계 구축을 꼽고 있으며, 현재의 단가 위주 업체 선정 및 단기 계약 위주 서비스 운영은 혁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분석하였다 [2]. 따라서, 지속가능한 기술개발 및 프로세스혁신을 위해 기업간 신뢰관계 형성 및 전략적 파트너쉽 구축을 먼저 선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플의 아이폰은 단순히 전자산업의 경쟁구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핸드폰을 이용하는 방식을 스마트폰을 통한 개인화된 서비스로 바꾸었다. 이후 우리는 매일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무인 드론 및 로봇 등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새로운 기술들의 개발을 목격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으로 모든 기기가 서로 연결되고, 3D 프린팅을 통해 제조 프로세스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며, 빅데이터와 클라우드를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예측하는 환경에서 물류 산업은 과연 어떻게 변화해갈까? 그 속에서 기술 및 프로세스의 혁신을 물류기업들이 선도할 수 있을까? 물류기업은 물류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라는 큰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지만, 혁신기업의 딜레마처럼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기존 경쟁방식에의 의존성을 높이고, 결국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에 혁신기업의 자리를 물려주는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급속한 기술발전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이며, 화주와 물류기업간 협력으로 혁신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에코시스템을 구축하여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선순환 관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IT 기술이 발달하고, 강력한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위치한 우리의 기업환경을 고려할 때 물류 혁신에 있어서도 기존에 없던 창의적 연구개발 및 혁신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이제 우리의 물류기업들도 IT와 물류를 융합한 창의적 물류혁신을 위해 물류연구소를 설치하고 혁신을 주도하여, 강남스타일과 같은 한류 K-wave를 물류혁신의 한류 K-Logistics로 발전시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물류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때다.


[1] Jim Rice (2014), "Inapt Innovations Can Do More Harm than Good", Supply Chain Management Review, 2014 Jan/Feb Issue

[2] Third-Party Logistics Study, http://www.3plstudy.com

[3]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혁신기업의 딜레마 (Innovator's Dilemma)

[4]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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