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 효율성 추구와 리스크 대응력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송상화 교수


생산기지를 전세계로 확장하고, 비용 및 품질에 기반하여 원자재 및 부품을 글로벌소싱하게 됨에 따라 기업의 경영환경은 외부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글로벌 경영이 공급체인 내 리스크에 의한 영향을 더욱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공급체인에 있어서의 리스크는 일본 대지진 및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대만 지진 등 천재지변, 9/11 테러, 미국 우정 (USPS) 에 대한 탄저균 오염 편지 테러 등 다양한 형태로 기업의 글로벌 공급체인을 위협해 왔다. 공급체인 리스크 관리에 대한 전략 및 실행방안 수립은 기업들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진이 발생하고, 테러가 공급체인을 위협하며,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공포가 공급체인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을 때 공급체인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기존의 품질관리 등의 기법이 리스크 관리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예를 들어 하청업체의 품질 불량은 일시적인 생산 차질과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시간 등으로 공급체인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만, 리스크와 품질불량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생산차질이나 품질불량 등의 문제는 그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지만, 지진, 테러, 화재 등의 리스크는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한, 생산차질, 품질불량 등의 문제는 프로세스, 인력, 시스템 등의 문제에 기인하고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 반면, 공급체인 리스크는 기업 운영 체계의 외부 문제에 의해 발생하고 예측 자체도 매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공급체인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공급체인 리스크에 대한 대응력이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도 크게 주목해야 한다.

공급체인의 단절이 발생하면 생산, 물류의 차질이 발생한다. 이때 충분한 여유 능력이 있는 경우 일정 수준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급체인 리스크의 특성은 언제, 어떤 규모로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 한참동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여유능력은 오히려 낭비로 인식되고 기업의 비용 요인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급체인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안전재고를 확보하고, 부품과 프로세스를 표준화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리스크 요인을 모니터링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실제 공급체인 리스크 관리는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루어진 결정보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대응에 따라 그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와 에릭슨의 리스크 대응 사례를 통해 기업의 리스크 관리 방향에 대해 살펴보자

(reference: The Resilient Enterprise: Overcoming Vulnerability for Competitive Advantage By Yossi Sheffi)


2000년3월 17일 일련의 번개가 필립스의 뉴멕시코 공장을 강타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생산하던 필립스의 뉴멕시코 공장에서는 번개에 의해 화재가 발생하였고, 소방차가 15분만에 출동하였지만 공장의 화재는 이미 내부 소방설비 및 잘 훈련된 필립스의 직원에 의해 10분여만에 진화되었다. 화재는 잘 진화되었고, 부상자나 시설에 있어서의 피해 역시 매우 경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소방관의 눈에 경미한 화재 정도로 여겨졌던 뉴멕시코 공장은 이후 노키아와 에릭슨의 운명을 갈라놓게 된다.

화재에 의한 불은 금새 진화되었지만, 화재에 의한 연기가 반도체 공장 전체에 퍼지며 먼지나 오염에 민감한 반도체 공정의 특성으로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문제였다. 필립스는 1주일 정도의 생산 차질을 예상하고, 이를 노키아와 에릭슨에 통보하였다. 생산차질 및 지연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였고, 기업들은 이에 대비하여 안전재고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산 차질 통보에 대해 노키아와 에릭슨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노키아는 생산차질 문제를 “특별관리” 리스크로 분류하고 이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1주일이 지나자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필립스는 공장 정상화에 몇 주가 걸릴 것이고, 이에 따른 생산차질은 몇 달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였지만 이를 고객기업에 즉시 알리지는 못했다. 반면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던 노키아는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즉시 문제해결팀을 구성하여 영향을 받는 부품들의 대체 생산기지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5개의 반도체 중 3개는 아시아 지역의 업체에서 대체할 수 있었으나, 2개의 반도체는 필립스를 통해서만 조달이 가능하였다. 노키아는 필립스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전세계 필립스 공장의 여유 생산능력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노키아에 1주 생산 차질이 통보된 것과 같은 시각, 에릭슨 역시 생산 차질 통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에릭슨은 이 문제를 단순한 생산차질로 판단하였고, “사소한” 생산차질 문제를 상부 관리자에게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담당자는 이 문제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경영진이 필립스의 심각한 생산 차질 문제를 파악하게 된 것은 몇 주가 흐른 뒤 에릭슨의 핸드폰 생산 역시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 시점이었다.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 제품을 적시에 공급해야 하는 에릭슨은 즉시 필립스를 비롯한 전세계 반도체 생산기업들에 여유 생산능력이 있는지 확인해보았지만, 이미 모든 공장은 여유 생산라인을 노키아 제품의 생산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를 파악한 시점이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10분만에 진화된 단순한 화재로 필립스는 4천만 달러 수준의 제품 생산차질을 빚었지만, 손해보험을 통해 3천9백만 유로를 보상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필립스가 받은 충격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 해 필립스의 반도체 부분 매출은 68억 달러 수준으로4천만 달러는 겨우 0.6%에 해당하였다. 반면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 신제품 출시가 불가능해진 에릭슨은 해당 분기에만 4억3천만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되었으며, 더욱 문제가 된 것은 크리스마스 시즌과 같은 성수기에 신제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2000년에 에릭슨은 23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고, 2001년 4월 에릭슨은 핸드폰 사업부분을 소니와의 조인트벤처에 매각하게 된다. 10분의 화재를 극복하는데 필립스는 9개월을 소모하였고, 노키아는 시장 점유율을 27%에서 30%로 올린 반면 에릭슨은 12%에서 9%로 내려앉게 된 것이다.



필립스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급체인을 둘러싼 리스크는 기업 내부의 문제 뿐만 아니라 기업 외부로부터의 충격에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노키아나 에릭슨 모두 단순한 생산차질에 대해서는 안전재고를 확보하고, 생산기지를 여러 곳에 분산배치하는 전략 등을 통하여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놓고 있었지만, 실제 문제가 발생한 이후 이에 대한 대응은 크게 달랐다.


공급체인 리스크는 기업 내부의 리스크와 달리 그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대응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두 기업 모두 어느 수준까지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10분의 화재가 9개월의 회복 기간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10분의 화재발생으로 인한 짧은 기간의 생산차질을 리스크로 인식하느냐에 대해서는 두 회사의 판단도 180도 달랐다. 화재가 발생한 이후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영향을 분석하여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유기적으로 구축되어 있었던 노키아가 에릭슨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효율성의 대명사로 알려진 토요타 자동차의 사례 역시 공급체인 리스크 관리 연구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토요타 자동차는 효율성을 추구하고 공급체인 전체의 동기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여유능력은 곧 낭비로 인식되고 이를 철저히 제거하는 전략을 도입해왔다. 따라서, 지진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대응은 재고를 유지하고 “낭비”가 많은 “비효율적” 기업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효율성 추구와 리스크 관리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되는 것이다. 1997년 협력업체 화재 사건에서 토요타 자동차가 보여준 리스크 관리 능력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리스크에 강했던 과거의 토요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Reference: https://sloanreview.mit.edu/article/the-toyota-group-and-the-aisin-fire/


1997년 2월1일, 아이신의 카리야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토요타 자동차에 납품하던 P-밸브를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P-밸브는 8달러에서 14달러 정도의 저렴한 부품이지만 토요타 자동차의 브레이크 시스템은99% 정도 아이신의 P-밸브에 의존하고 있었고, 1% 수준의 P-밸브를 공급하던 닛신 코교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P-밸브는 비싼 부품이 아니지만 생산에 필요한 정밀도가 매우 높은 부품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체 공급업체를 찾는 것도 어려워 최소 수준의 재고만 유지하는 토요타는 아이신의 공장 복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생산차질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반면 경쟁 자동차 업체들은 한달 이상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아이신의 카리야 공장 화재로 인한 생산차질로부터 여유로운 상황이었다. 위기상황에서 토요타의 협력업체들은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아이신은 P-밸브의 설계도면을 공개하여 토요타의 협력업체들이 해당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을 하였다. 수많은 협력업체들이P-밸브 생산에 도전하였고 결국 이틀만에 시제품이 생산되었고 2월 6일 토요타의 조립공장은 정상 가동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 아이신 공장 정상화 이후의 문제, 원가 부담의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하는 협력업체는 없었고 이들은 오로지 토요타 공급체인 전체의 정상화를 위해 희생하였다.

토요타 자동차가 추구하는 SCM은 결국 어느 한 기업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전체 공급체인의 원활한 흐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효율성 추구로 재고가 낮게 유지되어 리스크에 취약한 구조였지만, 공급체인 관점에서의 관리가 기업운영 철학으로 자리잡아 공급체인 단절의 위기 상황에서 전체 협력업체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아이신 공장의 정상화에 몇 달이 더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안전재고를 보유하고 여유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말라!”라는 명언이 있다. 하지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만 열심히 바라보라!”라는 말도 가능한 것이다. 공급체인 리스크는 결국 전체 공급체인 관점에서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철학이 기업에 확고히 뿌리내릴 때 효과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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